아네스 미술 칼럼)보지 못했지만 달려간다-부활을 향해 가는 사람들
파크로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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04.06 15:14
<부활을 향해 가는 사람들-사도 요한과 베드로>
부활절이 되면 가장 먼저 이 그림이 떠오른다. 외젠 뷔르낭은 다소 낯선 화가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명작을 남겼다. 이 작품은 파리의 옛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.
인상주의의 쟁쟁한 대가들 사이에 놓여 있어서인지, 이상하게도 이 그림을 또렷하게 보았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.
보통 부활을 그린 그림이라면 찬란하게 빛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.
그러나 어떤 화가는 그 결과 대신,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 소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그렸다. 외젠 뷔르낭의 《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》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.
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미술에서 가장 중심적이고도 영광스러운 주제다. 수세기 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이 장면을 그려왔지만, 대부분은 부활의 ‘결과’, 곧 영광의 순간에 주목해왔다.
하지만 외젠 뷔르낭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. 그는 부활의 찬란한 순간이 아니라, 그 소식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내면을 포착한다.
이 독특한 시선은 이 그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. 작품은 요한복음 20장 1~4절의 장면을 바탕으로 한다.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빈 무덤의 소식을 들은 두 제자가,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담고 있다.
외젠 뷔르낭 <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> 1898 캔버스에 유채 82x134cm, 파리 오르세 미술관
이 그림의 핵심은 ‘확신 이전의 시간’이다. 부활은 이미 일어났지만, 제자들은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. 화면 속에는 기적의 결과가 아니라, 그 기적을 향해 내달리는 인간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.
뷔르낭은 이 긴박한 순간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포착한다. 이른 아침의 빛이 대지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지만, 두 제자의 발걸음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릴 만큼 급박하다.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, 표정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교차한다. 불안과 희망, 의심과 기대가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살아 움직인다.

12사도 중 가장 어린 제자 <사도 요한>
부활절이 되면 가장 먼저 이 그림이 떠오른다. 외젠 뷔르낭은 다소 낯선 화가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명작을 남겼다. 이 작품은 파리의 옛 기차역을 개조한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.
인상주의의 쟁쟁한 대가들 사이에 놓여 있어서인지, 이상하게도 이 그림을 또렷하게 보았던 기억은 선명하지 않다.
보통 부활을 그린 그림이라면 찬란하게 빛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.
그러나 어떤 화가는 그 결과 대신,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 소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그렸다. 외젠 뷔르낭의 《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》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.
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미술에서 가장 중심적이고도 영광스러운 주제다. 수세기 동안 수많은 화가들이 이 장면을 그려왔지만, 대부분은 부활의 ‘결과’, 곧 영광의 순간에 주목해왔다.
하지만 외젠 뷔르낭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한다. 그는 부활의 찬란한 순간이 아니라, 그 소식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내면을 포착한다.
이 독특한 시선은 이 그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. 작품은 요한복음 20장 1~4절의 장면을 바탕으로 한다.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빈 무덤의 소식을 들은 두 제자가,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 채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담고 있다.
외젠 뷔르낭 <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요한> 1898 캔버스에 유채 82x134cm,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 그림의 핵심은 ‘확신 이전의 시간’이다. 부활은 이미 일어났지만, 제자들은 아직 그것을 보지 못했다. 화면 속에는 기적의 결과가 아니라, 그 기적을 향해 내달리는 인간의 감정이 가득 차 있다.
뷔르낭은 이 긴박한 순간을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포착한다. 이른 아침의 빛이 대지를 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지만, 두 제자의 발걸음은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릴 만큼 급박하다.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고, 표정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교차한다. 불안과 희망, 의심과 기대가 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살아 움직인다.

12사도 중 가장 어린 제자 <사도 요한>
젊은 사도 요한은 앞서 달려가며 간절한 기대를 드러낸다. 그의 두 손은 마치 기도하듯 모아져 있다. 아직 보지 못했지만, 이미 믿고 있는 사람의 몸짓이다.
반면 베드로의 얼굴에는 깊은 고통이 드리워져 있다. 그는 스승을 세 번 부인했던 기억 속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. 그의 달음박질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라, 후회와 회복을 향한 절박한 움직임처럼 보인다.

으뜸사도 <베드로>
두 인물의 손짓은 이 작품의 신학적 깊이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. 베드로의 오른손은 가슴 중앙에 놓여 경배를 나타내고, 왼손은 오직 한 분을 가리키듯 앞으로 향한다. 이 단순한 제스처는 말없이 신앙을 고백하는 몸의 언어다.
배경은 놀라울 만큼 절제되어 있다. 갈릴래아를 연상시키는 들판과 두 인물, 그리고 몇 가지 색조뿐이다. 그러나 이 단순함 속에서 뷔르낭은 빛과 공기의 미묘한 흐름을 포착해낸다. 그는 인상주의적 감각을 통해 외형보다 내면의 떨림을 드러낸다. 두 제자의 슬픔과 불안은 아침 햇살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, 동시에 부드럽게 감싸인다.
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분명하다. 부활이라는 사건 자체보다, 그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상태를 그렸기 때문이다. 우리는 여기서 완성된 믿음이 아니라, 형성되어 가는 믿음을 본다. 확신이 아니라, 확신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이 그림의 진짜 주제다.
어쩌면 그래서 이 장면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. 부활을 목격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, 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. 그들의 숨 가쁜 걸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. 우리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희망을 향해, 때로는 불안과 의심을 안은 채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.
한편 외젠 뷔르낭은 스위스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활동한 화가로, 장프랑수아 밀레와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 전통 속에서 성장했다. 그는 당대에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, 인물의 심리를 포착하는 데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. 그의 그림이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.
많은 작품이 아니어도 좋다. 단 한 작품이라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면, 그것으로 화가의 소명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.
이 그림이 오래 남는 이유는 완성된 믿음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 인간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.
아직 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,
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채 한 걸음 내딛는 모습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.
결국 이 작품은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.
우리는 보고 믿는가, 아니면 믿기 때문에 달려가는가.
<그리스도의 부활>

가우덴치오 페라리 <그리스도의 일상> 1513 프레스코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이탈리아

프라 안젤리코 <빈 무덤 앞의 여인들> 1437~1446년
라파엘로 산치요 <그리스도의 부활> 1499–1502 목판에 유채화 52 x 44 cm 상파울로 미술관 브라질

한스 멤링 <부활> 15세기

루카 조르다노 <부활> 1665년 이후

제임스 티소 <부활> 1890년 브루클린 박물관
<아네스의 미술칼럼을 읽어 주시는 회원님께 알립니다.>
회원님들의 격려로 brunch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.
돌싱닷컴에서도 계속 연재를 이어 갑니다!!!!
그림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양한 글을 올리다 보니, 분류와 정돈이 필요해 brunch를 오픈 하였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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